대조영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발해"를 세운 사람이다. 드라마를 보다보니 "발해"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어제는 책장 깊숙이 박혀 있던 역사책 한권을 꺼내 들었다.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서울 대학교 교수이신 한영우 교수가 쓴 책이다. 예전에 우리 역사를 다시 공부해 보고자 샀었는데 결과는 몇 장 읽지 않고 서재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 "대조영"덕에 호강을 하게 되었다.
그 내용을 조금 옮겨 보면..
신라가 대동강에서 원산만을 잇는 선(線) 이남의 땅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대동강 이북과 요동지방의 고구려땅은 당의 안동도호부 관할하에 들어 갔다. 그러나, 고구려 유민들의 끈질긴 항쟁에 부딪쳐 698년에 안동 도호부가 폐지되고, 요동지방에는 보장왕의 후손들이 안동도독을 9세기초까지 세습하면서 독립성을 강화해 갔다. 이것이 이른바 소고구려국이다.
한편 요서의 영주 지방에는 당의 이민족 분열정책에 의해 많은 고구려의 유민과 거란족, 말갈족이 강제로 이주해 와 살았는데, 696년에 거란족의 반란(이진충의 난)이 일어나 당의 지배가 약화된 틈을 타서 많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들이 만주 동북지방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다. 걸걸중상의 아들 대조영이 698년에 지금의 길림서 돈화시 부근의 동모산 기슭에 세운 발해가 그것이다. 발해는 그 후 현주, 상경, 동경,상경으로 여러차계 도읍을 옮기면서 국가 발전을 도모해 갔다.
대조영에 대해서는 중국측 기록에 고구려인인지 말갈인인지 애매하게 표현되어 있어 논란이 있다. 그러나 발해가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구려의 옛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라고 천명하고, 일본이 발해에 보낸 국서에서도 발해왕을 때로는 '고려왕'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뒷날 발해가 망하자 그 지배층이 고려로 대거 망명하였으며, 고려 자신도 처음에는 발해를 계승한 나라임을 자처한 것 등을 미루어볼 때,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이 분명하다.
발해는 2대 무왕 대무예 때부터 영토를 확장하여 북만주 일대를 차지하고, 당의 등주에 해군을 보내어 공격한 일도 있었다. 3대 문왕 대흠무 때에는 당에서 안사의 난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요하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수도를 북쪽 상경으로 옮겼다. 발해는 이 때 고려국을 표방하고, 유신을 단행하면서 불교의 전륜성왕의 이념을 채택하기도 하였따. 일본에 대해서도 천손임을 자랑하고 황상이라는 칭호를 쓰면서 황제 국가의 면모를 보여 준 것도 이 시기이다.
8 세기에 융성기를 맞이 했던 발해는 9세기에 들어서서 쇠퇴기로 접어 들었다. 5대 성왕, 6대 강왕, 7대 정왕, 8대 희왕까지는 내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10대 선왕에서 14대 대위해에 이르는 기간에 발해의 국력이 중흥기에 달하여 남쪽으로 신라와 국경을 접하고, 북으로는 고구려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으며, 5경 15부 62주의 지방제도가 완비되기에 이르렀다. 발해가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도 이 때부터이다. 당나라 빈공과에서 신라 다음으로 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것도 이 무렵이다.
영토상으로 신라보다 큰 나라가 된 발해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발해의 성장에 위협을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당과 신라였다. 그리하여 당은 이이제이 정책을 써서 신라로 하여금 발해를 남쪽에서 공격하게 하고(732~733), 당나라에 있던 대문예(무왕의 동생)를 시켜 발해를 공격하게 하였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발해는 당과 신라의 위협을 막아내기 위해, 처음에는 북으로 돌궐, 남으로 일본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8세기 말 이후로는 신라 및 당과의 관계가 호전되어 산동성 등주에는 발해사신을 접대하는 발해관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신라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발해에 사신을 보냈으며, 발해는 당으로부터 비단,서적, 공예품을 수입하고 말,도자기 등을 수출하는 등 교역 관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발해는 9세기 말을 고비로 하여 그 후에는 점차로 국력이 약해지다가 916년 발해 서쪽에 건국한 거란족의 침략을 받아 926년에 멸망하였다. 이로써 15대 230년 가까이 지속된 발해의 역사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러나 발해 멸망을 전후하여 5만명의 발해 귀족들이 고려로 망명하여 고려 지배층의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으며, 이들이 고려 문화 발전에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 나머지 발해 유민들은 각지에서 200여 년간 부흥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발해에 대해 좀더 알고 싶었으나, 자료가 빈약하여 갈증을 채워주지는 못하였다. 혹 "대조영"을 다룬 소설이 있는지 찾아봐야 겠다. 그리고 한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건 걸사비우가 말갈인이라는 거... 대조영을 처음부터 보지 못해서 그런 내용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책에는 걸사비우가 말갈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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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07/09/12 17:14